다녀온 날: 2017.02.02
수도권광역철도 경강선 세종대왕릉역 | 역번호 K419 | 경기 여주시 능서면 양화로 (신지리) 소재
2016.09.24 개업 | 2승강장 2타는곳 (상대식, ㅁ||ㅁ) | 출구 1개소
관내의 세종대왕릉(영릉)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쌀도 팔아먹고 전국적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경기도 여주 · 이천시.
그런데 이 곳은 조선의 법률상 원래 왕릉이 들어 올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갑자기 제목에 등장하신 걸까요. 이 글 맨 끝에 답이 있습니다.

S#.1 이번역은 경기 여주시에 위치한 경강선 세종대왕릉, 세종대왕릉역입니다.
◈여주평야

부발역을 출발한 경강선 열차는 다시끔 터널 하나 없는 평야 지대를 달립니다. 그 유명한 임금님표 이천쌀이 나오는 평야압니다.

세종대왕릉역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뭔가 불길하게 열차 안에도, 그리고 내리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번 역이 엄청 한산하다는 암시를 대놓고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밖 버스.
S#.2 이번역은 수도권에서 6번째로 한산한 역입니다.
◈심각하게 한적한 경강선 세종대왕릉역

세종대왕릉역의 승강장입니다. 일단 상대식 승강장을 갖추고 있고, 여김없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신설역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여김없이 보이는 주차장. 역시 여기도 주차장이 부족한지 도로변까지 차들이 서 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찍어 본 승강장. 한적하다는 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 역은 경강선에서 가장 사람이 적게 타고 내리는 역입니다. 하루에 636명이 이용(2019년 평균)인데 이는 총 수도권 전철역 중 뒤에서 6번째로 적은 수치입니다.
양평군 지평면 지평역(114명), 시흥시 월곶동 달월역(132명), 춘천시 남산면 백양리역(337명), 굴봉산역(362명), 양평군 양수면 신원역(430명)로 한 곳 빼고는 모두 수도권 동부 산악지역(양평, 춘천)의 '면'지역에 위치한 곳입니다. (수치는 코레일 2019 수송통계 참고, 그나저나 이 중 제가 다녀온 곳은 달월역밖에 없군요. 흠흠)
뭐 여기도 여주시 능서면이긴 한데 평야지역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여튼 여기도 많이 한적하다는 겁니다.

역 밖으로 카메라를 빼면 뭔가 작은 마을이 보입니다. 저기가 인구 6465명(행안부 통계)능서면의 중심지인 신지리가 보입니다. 이렇게 떡 하니 보이는 장소에 역이 있는데도 승객수가 적은 것을 일단 저 동네 자체의 인구나 너무나도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농촌 중심지 그 자체로 결정적으로 아파트가 없어요(...)
◈세종대왕릉 가기 힘듦

게다가 이 역 주변에 볼거리도 없어요. 이 역명인 세종대왕릉(영릉)은 도보 4.4km입니다. 버스는? 시간표를 봐야 하는 농어촌버스에요. 물론 실시간 위치정보가 제공되니 이거 보시면 됩니다.
여주 농어촌 버스는 대부분 여주역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시간표는 여주역 출발 / 종점 출발 이렇게 나와 있고, 따라서 시간표만 보고 세종대왕릉(영릉)에 가야 한다면 여주역이 편리합니다. 게다가 여주역서 영릉이 세종대왕릉역부터 영릉까지 거리보다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원래 경강선 개통직후 세종대왕릉역과 세종대왕릉역을 1시간에 2대 꼴로 연결하는 버스가 2019년 초까지 잘 다니고 있었거든요(904번). 근데 어느 순간 보니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있더군요(...)

세종대왕릉역 역명판. 왕릉의 서쪽이라는 뜻의 '능서'라는 지명이 있음에도, 굳이 세종대왕릉의 정식명칭인 '영릉'이 있음에도 세종대왕릉을 사용했습니다. 원래 영릉역이라 할려는 것을 지역주민들의 시위로 바꾼 거라고 합니다. 유명한 인물인 세종의 이름을 넣는 것이 지역 발전에 도움되지 않을까 해서 넣은 것 같은데. 뭐 그렇죠 뭐.
◈맞이방 풍경

자, 자. 이제 맞이방으로 갈 시간입니다. 일단 계단을 내려와서 한 컷. 저조한 수요를 인식해서인지 통로도 뭔가 다른 역에 비해서 좁습니다.

시간표가 벽에 붙어서 찍었었습니다. 뭐 여백이 거의 전부를 차지하네요. 20~30분에 한 대 다니는 열차. 게다가 출퇴근 시간이라고 해서 더 자주 다니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출퇴근 시간이라고 경강선에 투입되는 열차들은 전부 전역인 부발역까지만 운행하거든요.

뭐 지금도 저거랑 비슷합니다. 주말말에는 배차간격이 50분까지도 벌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더라고요. (18:50분차와 19:38분차의 간격이... 엄청납니다)
뭐 이건 여주-세종대왕릉 구간의 승객 수가 미미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요.

아 그래도 나름 세종대왕역이라고 벽에 한글에 대한 설명판이 붙어 있습니다. 근데 그림은 없고 글 뿐이라 영 눈에 안들어 옵니다..

승강장과 역사 사이의 공간. 이런 곳까지 눈이 치워져 있군요. 오오

개집표기입니다.

세종대왕릉역의 대합실은 단순한 박스형태입니다. 체광은 없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볼일은 볼 수 있도록 화장실은 있습니다.
◈한적한 역 밖

역 안에 세종대왕릉역까지 가는 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어요! 깨알같은 따스한 배려가 돋보입니다. 주말에만 운행하는 (아까 언급했던)904번 버스로 지금은 없습니다. 단체로 오셨다면 택시를... 타시죠.

역의 겉모습. 좀 아까 부발역 느낌이 좀 나면서도, 그리도 일부 벽에 한글을 이용한 디자인을 해 두었습니다. 그나저나 갑자기 생각났는데 경강선에서 세종대왕태마열차를 운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영어 역명이 한국어를 그대로 적어놓은지라(로마자 표기법) 상당히 끊어 읽기 뭐랄까 굉장히 이상한 이름 Sejongdaewanreung이 되었습니다. 상당한 길이를 차지하는지나 눈에 확 들어오죠?

좀 더 멀리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한글이 역을 뒤덮고 있습니다. 규모는 작은 편으로 나름 수요에 맞게 지어졌습니다.

그리고 빼먹지 않고 지붕으로 연결된 버스환승시설까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에 보이는 저 시간표의 버스는 폐지되었다는 것이 함정...!!!
그리고 사진 모퉁이의 Sejongdaewanreung이 묘하게 신경쓰입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나름 방음벽입니다. 전철역을 만들어 놨는데 방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겠죠. 여러 아파트를 올릴 계획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역에서 엄청 가깝기에 나름 수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물론 저 방음벽 옆은 논입니다. 나름 가을이 되면 열차를 배경으로 황금 들판이 될 테인데 그 떄를 노려 이 역으로 출사오신 분들도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저는 여기서 20분을 기다릴 수는 없으므로 사진을 찍지는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릉

이야. 역 한 곳에 세종대왕릉역까지 걸어가는 안내표지판이 있습니다. 4.4km가 적힌 것이 좀 상당히 무섭다고 느껴집니다...
자. 이제 이렇게 역을 모두 둘러봤으니 저는 다음역으로 갑니다!를 시전했습니다. 다음역인 여주역은 이미 갔고, 답사기까지 써서 업로드했기 때문에 다 둘러본 샘입니다. 그래서 경강선 전철을 다시 타러 갔어요.
하기에는 뭔가 아쉽죠. 제 글이 역과 주변 답사인데 아직 주변을 다 안 둘러봤잖아요. 또 떡밥 회수도 해야죠. 그래서 영릉 사진을 갖고 왔습니다. 허허허허. 자연스럽게 계절이 바뀌는 건 넘어가자요
S#.3 영릉은 원래 이 위치에 없었습니다.

영릉! 정확히는 영녕릉입니다. 세종대왕과 와이프 소현황후의 영릉, 그리고 북벌로 유명한 조선후기의 효종과 아내 인선왕후의 영릉이 있어요. 오타(?) 아니고요 한자가 다릅니다. 英릉과 寧릉 이렇게요. 저는 뭐 시간관계상(이라고 내걸고 실은 귀찮아서) 세종의 영(英)릉만 보려고 합니다.
◈영릉의 이상한 위치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왕릉은 한양성 사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통 조선왕릉은 능참봉이라는 말단 관료(9급 공무원급)에 의해 관리되었는데요. 간혹 특별한 날에 왕이 직접 와서 참배(능행)하기도 했습니다. 갔다 오는 동안 도성에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르니 당일치기로 갔다 와야 합니다. 근데 왕릉이 멀리 있다면 힘들겠지요. 대부분의 왕릉은 이 규칙을 적용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습니다. 덤 정조&사도세자의 수원 융건릉. 단종의 강원도 영월 장릉. 그리고 개성에 있는 신의왕후릉(제릉)과 정종릉(후릉)입니다.
일단 후릉/제릉의 경우,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초기에 만들어졌기에 그런 것이고요. 영월의 장릉은 단종이 영월로 귀양가서 죽었고, 후에 왕으로 복위되어서 그렇습니다. 융건릉의 경우는 특이한데 정조가 현 수원시를 개발하면서 근처로 이장한 것입니다. 일단 위의 사례들은 처음 지을 때부터 저 규칙을 위반한 사례들입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의 영릉은 조금 달랐어요.
◈죽어서 고생한 세종

세종대왕. 참 훌륭하신 분이죠. 지폐에도 들어가 있고요. 그런데 이분은 죽어서 참 고생하셨습니다. 이것은 그의 작은 효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효심의 자극했던 우리의 세종은 생전에 자기 아버지 태종의 무덤인 헌릉(현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 국정원 옆)옆에 뭍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인 소헌왕후가 먼저 죽자 무덤을 태종의 헌릉 옆에 마련했고, 자기도 옆에 묻었습니다. 근데 당시에 반대의견이 있었습니다. 특히 풍수를 맡아보는 관청인 서운관의 부정(서운관 top.3)직책의 최양선이라는 자는 "자손이 끊어지고 맏아들이 죽는 자리다"(絶嗣損長子)까지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록에 실제로 이렇게 적혀 있어요) 이 자는 막말 모욕죄(!)로 의금부에 수감되었다가 임금의 명으로 풀려났더군요. 세종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참조:
조선왕조실록 누리집에서 "壽陵"키워드로 세종대 검색.
세종실록 99권, 세종 25년 2월 2일 무자 1번째 기사 1443년) 의정부와 예조에서 최양선을 벌할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하다
◈계속되는 장자의 죽음. 촉발되는 논란

그리고 1418년, 세종이 승하합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원했던던 아버지의 서쪽에 뭍히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 떡밥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잘못되었다, 옮기자!라는 예기가 쭉 나옵니다. 세조는 죽기 전인 1467년에 신하들보고 옮기는 것이 어떠나? 묻기도 합니다. (참고로 저 때 신하들의 답이 달랐는데 답이 우물쭈물하다는 이유로 하옥시켰다고 합니다. ㄷㄷ)
어쩌면 세조는 둘째인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 생전에 세종의 묘자리를 정할 때 "첫째가 죽는다"던 헌릉 옆의 땅을 보고 아무 말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최양선이라는 자가 한 말대로 흘러갔습니다. 세종의 맏아들인 문종과 단종이 단명해서 대가 끊어졌고, 자신의 첫째아들인 의경세자도 요절했으니 말년의 세조 입장에서 더더욱 두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기 전에 바로잡아야겠다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그 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됬습니다. 예종 즉위년부터 옮길 장소를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세종의 묘가 있던 현인릉 주변에 좋은 자리가 없냐무터 시작해 결국 그 해 12월에 여주로 결정됩니다. 호조판서(~기획재정부 장관) 노사신, 예조판서(~외교,교육부,문제부장관) 임원준, 한성부 윤(~서울시장) 서거정이 직접 가서 골랐다고 합니다
세조실록 42권, 세조 13년 4월 5일 경자 2번째기사 1467년 신숙주·구치관 등에게 영릉의 개장을 의논하게 하다
◈여주로 오기까지

참고로 마지막까지 결전을 벌였던 곳은 여주 성산의 이계전의 무덤과, 강금산(현 여주 점동먄), 용인 금령산(현 용인시청 일대)였다고 합니다.
천장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기존의 영릉 석물은 땅에 묻었고, 5000여 명이 동원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영릉 앞에는 바로 남한강이 있습니다. 수운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당일치기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따라서 이 왕릉이 먼 곳 100리 밖에 자리할 수 있던 것에는 남한강의 덕이다. 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천장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야기는 쑥 들어갔고, 나중에 효종의 영릉이 문제가 생기자 옮겨 온 것도 영릉(세종대왕릉)의 옆이었습니다.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 용이 똬리를 트는 형상이라는 천하 명당 자리라고 평가받는 곳이라고 해요. 혹자는 "이 왕릉 풍수 덕에 조선왕조가 100년 더 갔다"주장하기도 합니다.
◈ 무덤을 뺏긴 자들
아, 그리고 무덤을 뺐긴 이인손, 이계전의 자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장자 이극배는 의정부 우참찬(정2품)으로 승진했습니다. 요기에 대한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많아요. 여기는 야사니까, 재미있게 들으시면 됩니다.

이인손이 죽을 때, 유명한 지관을 초빙해 묘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근데 이 지관이 하는 말이 꼭 가문이 번창하더라도 묘 입구에 다리를 놓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묘지 덕인지는 몰라도 그 후에 이 가문은 정승판서가 줄줄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건 선조의 예의가 아니라 하고 무덤 입구에 다리를 놓았다고 해요.
근데 마침 새 영릉 자리를 찾기 위한 지관들이 여주 일대를 올 때즘, 소나기가 내렸고, 비를 피하다가 하필이면 저 다리를 발견했고, 그 옆의 제실(무덤 관리 사무소)에서 비를 피하고 보니 이 자리가 명당 자리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덤을 팠더니 "동방의 성인이 뭍일 곳이다"라는 표석이 나왔고, "연을 날려서 떨어진 곳에 새로 묻어라"라는 표석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뒤에도 자손이 번창했고, 연이 떨어진 마을은 이 일을 따서 "언라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예종실록 2권, 예종 즉위년 12월 26일 임자 1번째기사 1468년 노사신·임원준·서거정 등이 영릉을 천장할 땅을 여흥에 복지하고 복명하다
예종실록 2권, 예종 즉위년 12월 27일 계축 2번째기사 1468년 천릉할 땅을 여흥 성산의 이계전의 분묘로 정하고 술자리를 베풀다
[정경연의 풍수기행] 여주 세종대왕 영릉, 부모 묘 근처가 반드시 '명당'은 아니다 | 중부일보 2016.09.08
◈ 박정희
하지만 영릉의 변신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영릉인 이런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대로 있었다면 다른 왕릉처럼 평범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977년, 이곳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프로파간다로 변질됩니다. (그나저나 어제가 5.16이었죠) 박 전 대통령은 구국영웅이던 이순신 장군을 크게 부각시켰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만 숭상시한다고 일각의 비판이 일자, 문의 차원에서 세종대왕도 같이 성역화 했다고 합니다. 하여튼 박 전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 성역화 사업과 함께 영릉 성역화 사업을 벌였습니다.

진입로를 정비했고, 영릉의 재실과 세종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연못을 만들었고 길을 말끔하게 정비했습니다. 문화재 보존이 아닌 측면에서만 보면 좋은 일이었습니다. 참배는 깔끔해졌고, 민족의 성군인 세종대왕을 기리는 장소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릉은 여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보면 썩 좋지 않습니다. 제실은 원래 위치가 아닌 곳에 지어진 것이였으며, 참도는 제후국(왕)의 형식인 2단 구성이 아니라 황제국의 구성인 3단 구성으로 복원됩니다. 정자각을 동편 올라가는 계단도 제후국(2개)여야 하는데 황제국(3개)입니다.


게다가 연못도 그렇고요. 하여튼 눈은 편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는 그런 상황인 것이죠.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때, 조건 중 하나가 영릉의 원상복귀였다고 합니다.
◈ 영릉의 현주소


2017년 10월에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복원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지금 현재 저 참도는 복원되었고, 기존의 부대시설은 전부 밖으로 이전했습니다. 구글어스의 최신 위성사진이 2019.10자인데 영릉 진입로가 온통 흙밭이더군요.
공사를 보니 영릉 전체를 뜯어 고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하반기에는 영릉 전체의 출입이 통제된 모양이더군요.

아 딱 마침 글 쓰는 시점 전날로 영릉의 일부지역의 관람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개방이여서 효종대왕릉과 세종대왕릉을 잇는 샛길을 통해서 가야 한다고 합니다. 뭐 하여튼 개방된게 어디에요.
그나저나 이 글은 두번째 진입공간과 광장이 개방되는 20년 7월 이후에나 업로드 될 것 같은데... 아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시점에서는 전면 개방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여튼 오늘 영릉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종은 1450년 사망 이후 다양한 공사에 시달렸습니다. 이 복원공사가 끝나면 영릉은 좀 더 원래 모습에 가까워 질 것이고, 약 57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드디어 영원한 안식에 다다를 것입니다.

하여튼 오늘은 세종대왕릉역과 세종대왕릉(영릉)을 둘러봤습니다. 거의 현대사만 주제로 삼다가 간만의 조선시대르 깊게 파니까 하여튼 새롭고 좋습니다.
그리고 저의 경강선 답사는 이 역이 마지막역입니다. 하지만, 뭔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번외편으로 하나를 더 준비했습니다... 기대하시라 두둥.
2020.05.17 작성
출처
조선왕릉에 숨은 풍수와 권력의 역사 | 연합뉴스 2009.11.07
영릉 사진들: 세종대왕유적관리소>영릉이야기>영릉의 발자취 (링크)
여주시사 누리집 > 세종대왕릉 (링크)
세종대왕이 언제 황제로 등극했지?성역화 사업으로 망친 영릉 참도 | 오미이뉴스 2005.10.18
세종대왕릉 일부지역 관람제한 해제 및 유료관람 재개 안내 | 세종대왕유적관리소 (2020.04.26) (링크)
'철도 > 수도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용인 강남대역 || 뭔가 부족한 느낌 (0) | 2021.01.14 |
|---|---|
| [이번역은] 성남 이매역 | 분당선과 경강선의 L자 환승기 (0) | 2020.05.17 |
| [이번역은] 이천 부발역 | 평야, 쌀, 도자기, 반도체! (0) | 2020.05.17 |
| [이번역은] 이천 이천역 | 이천의 관문은 머나먼 산속에 (0) | 2020.05.06 |
| [이번역은] 이천 신둔도예촌역 | 옹벽 위는 소리없는 혼잡상태 (주차난) (0) | 2020.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