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간 날: 2017.10.12
서울 도시철도 5호선 여의도역 | 역번호 526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여의도동) 소재
1996.08.12개업 | 2승강장 2타는곳 (상대식, ㅁ||ㅁ) | 출구 6개소
서울 도시철도 9호선 여의도역 급행 | 역번호 915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여의도동) 소재
2009.07.24 개업 | 2승강장 2타는곳 (상대식, ㅁ||ㅁ) | 출구 0개소
이번 글부터는, 이 여의도역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의 남서부 지역을 탐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강서, 양천, 영등포구가 될 것 같습니다. 30개나 정도 되는 역을 둘러볼 것이기 때문에, 글이 모두 올라오려면 아마 한참 걸릴 것 같네요.
[사진 1. 서울도시기본계획]
2016년 서울시가 발표한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의 도시구조는 중심이 3개인 3핵도시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 3개의 중심은 각각 한양도성, 강남, 그리고 “여의도 및 영등포”입니다.
실제로, 여의도역 일대는, 정치, 경제, 상업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의도의 별명이 바로 “대한민국의 맨해튼”입니다. (맨해튼은 뉴욕에 있는 미국의 경제 중심지입니다) 그리고 저는, 9호선 급행열차에서 여의도역에 하차합니다.
[2. 9호선 여의도역 승강장]
아직 체 7시가 되지 않는 시각. 도심으로 유명한, 하루에 9만 2천 명(2019년)이나 이용하는 여의도지만, 아직 여의도역의 승강장은 한산합니다. 참고로, 5호선 4.9만, 9호선 4.2만 명으로 노선에 따른 이용객 수는 크게 나타나지는 않네요.
[3. 9호선 안전문]
환승역이자, 서울의 대표적 중심인 관계로. 여의도역에는 9호선 급행열차가 정차하고 있습니다. 여의도역은 상대식 승강장으로 지어진지라, 급행열차가 일반 열차를 추월할 수는 없습니다. 관련 시설은, 인접 역인 샛강역에서 가능합니다.
[4. 9호선 환승 게이트]
9호선답게, 5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는 환승게이트를 거쳐야 합니다. ‘+’자 형태로 교차하는 관계로, 환승통로는 9호선 승강장 중앙에 있습니다. 멀리 걸을 필요 없이 계단을 2번만 내려가면, 5호선 승강장이 나오게 되는 깔끔한 구조입니다.
[5. 여의도역 역안내도]
한 가지 이 역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나중에 지어진 9호선(지하 2층)이 먼저 지어진 5호선(지하 4층)보다 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5호선은 한강을 건너야 하므로, 심도가 깊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 5호선 여의도역을 지을 때, 9호선 승강장을 미리 건설해 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 깔끔한 환승이 된 것이죠. 2기 지하철의 특징입니다. 다만 IMF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건설 예정 노선 대다수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 역은 신안산선과 GTX-B노선이 만날 계획인데, 이때는 상당히 긴 환승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6. 9호선 여의도역 역명판]
‘여의도’라는 이름 그대로, 여의도는 한강 위에 있는, 인구 34000명의(2021) 편평한 하중도입니다. 너무 편평한 탓에 장마철만 되면 물에 잠기는 것이 연례행사였답니다. 그래서 이 섬은 동물의 목축장으로 이용되었고, 정작 사람들은 강 건너편의 밤섬에 많이 살았습니다. 또, 한강과 가까운 것을 이용해, 한강 수운과 관련한 직접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현재, 여의도는 서울의 중심지로 개발됐지만, 여의도는 서강대교 밑의, 민간인 접근 불가능이 되어 버린 것을 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참 모를 일 같습니다.
[7. 5호선 역명판]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잉화도(仍火島)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나희’, ‘여의’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 섬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내려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매년 물에 잠기는 여의도를 “너나 가질 섬”이라고 해서 “여의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8. 1969년 여의도비행장의 모습 위키피디아 공용]
여의도의 변화는 일제강점기 때 찾아옵니다. 제국주의의 대두로 인천이 개항하게 되자, 서울-인천 간 교통 수요가 증가했습니다. 여의도-마포 측선은 이 커다란 흐름을 직선으로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포 쪽에 고개(아현)이 있는 관계로 경인선 철길은 용산으로 우회하게 됩니다. 게다가 서울 시가지는 강북에 있지만, 여의도는 한강 남측과 붙어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발이 뒤처집니다.
[8.1 개발 직전 여의도 모습]
다음 블로그 현이의 이바구, 여의도 윤중제 준공식 | https://blog.daum.net/gmania65/1208
상대적 저개발지였던 여의도에는, ‘넓은 땅’이 필요한 도시 기반시설이 들어왔습니다. 1916년에는 조선 최초의 비행장인 ‘여의도비행장’이 건설됩니다. 또 1914년에는 조선 최초의 근대적 경마가 여의도에서 열렸습니다. 1921년 조선인 최초 비행사 안창남의 시범비행이 열려 수많은 관중이 운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여튼, 이곳은 광복 이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일단, 한국 공군의 최초 훈련장소가 이곳이었습니다. 1958년까지 대한민국의 수도공항의 역할을 맡았으며, 1971년 한강 개발 추진 전까지 계속 군공항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여의도 주변이 시가지로 개발되어 서울에 편입되었음에도 불과하고요.
(+ 여의도에 있던 군공항은 성남으로 이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현재의 서울공항입니다)
[9. 한강 개발사업 이전 한강의 모습.]
출처: 피서 풍경/손성진 논설주간, 서울신문, 2017.07.23
60년대 말, 서울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일단, 급격한 이촌 향도 현상으로 주택이 부족했습니다. 또, 하나의 현안은 바로 한강의 정비였습니다. 뚝섬 일대, 영등포 노량진 일대에만 제방이 있었고, 나머지 지역은 수해에 취약점이 노출되었습니다. 만약, 한강 변에 제방을 쌓고 주택을 건설하면, 서울시의 주택난과 서울시의 재정난을 해결하는 동시에, 치수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은 한강 개발을 밀어붙입니다. 그리고, 이 한강 개발의 전초전이 여의도 개발이었고, 여의도 개발의 시작은 윤중제라 불리는 제방을 축조하는 공사였습니다. 이 공사는, 당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대규모 공사였습니다.
[10. 윤종제 공사현장. 서울사진아카이브]
1967년 12월 말에 시작된 윤중제 공사는 속도전이었습니다. 이듬해 여름의 장마가 오기 전에 완성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천 폭 확보와 제방의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바로 옆에 있는 밤섬을 폭파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50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왔던 밤섬 토박이들은 와우산 기슭으로 집단이주되었습니다. 공사를 주관했던 김현옥 시장은, 아예 여의도에 집무실을 차리고 공사를 감독했다고 합니다. 국회에서 국회 이전 용지 마련을 요청한 것도 이때입니다.
여담이지만, 완공 이후인 1971년 한 재일교포가 기증한 벚나무 묘목 2400주를 윤중제에 심었고, 이것이 여의도 벚꽃길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11. 완공 직전의 마포대교]
네이버 블로그 한가람의 사랑방. 서울 한강과 주변의 옛모습들 - 8, https://m.blog.naver.com/nahasa1/60210483597
윤중제 이후, 여의도와 마포를 잇는 남한 최대 길이의 서울대교(혹은 제4 한강교. 현 서울대교)가 건설되는 등, (여의나루역 답사기 참조. https://blog.naver.com/kimscientist/220926869723) 여의도는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도시를 짓는 데 필요한 것은 도시계획입니다. 김현옥 사장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인 김수근 건축가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 여의도 계획을 의뢰합니다. 김현옥 최고의 도시를 여의도에 건설하고 싶었습니다. 충분한 시간적, 금전적 요소가 제공되었고, 1968년 3월 말, 초안이 조선일보를 통해 공개됩니다. 하지만, 이는 곧 수정되었고, 비슷한 시기 서울의 도시계획 책임자였던 고 손정목 교수는, “김현옥 시장에게 보고되기 전에 신문에 먼저 보도되어 버린 것 같고, 따라서 김시장의 노여움을 산 것으로 추측이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더 추상적인 계획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12. 김수근의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
여의도에 국회-도심-시청을 동서 방향으로 선형이게 배치하며, 사이에 주택단지와 외교관 공관 단지를 배치했습니다. 보행자와 차량을 두 층으로 분리한다는 내용이 골자였습니다. 또, 우리나라를 서울 구도심(한양도성) - 영등포 - 인천의 축으로 개발하며, 그 중심에 여의도를 둔다는 큰 구상도 담겨 있었습니다.
이는 김수근 건축가의 세운상가(1966), 더 나아가 그의 스승인 단게 겐조의 「도쿄계획 1960」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3. 1968년, 김수근의 계획을 바탕으로 기흥성이 제작한 모형]
김수근이 꿈꾼 여의도는 첨단 미래도시였다, 조선일보 2019.09.03
하지만 김수근의 계획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좋게 말해서는 ‘시대를 앞선 청사진’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동화 속 꿈의 궁전’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각종 토목 공사 (특히 윤중제)로 인해 서울시는 공무원 월급조차 주기 어려울 정도의 재정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 소득 210달러(1969)의 가난한 국가였습니다.
또, 그 와중에 김형옥 시장은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고, 양택식 시장이 부임했습니다. 당시 여의도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서울시 기획관리관 손정목은, 홍익대 도시계획과장이었던 박명주 교수에게 도시계획의 수정을 요청하였고, 새 계획이 발표됩니다. (1971)
[14. 박병주의 도시계획]
골자는 이렇습니다. 주거지역을 16만 평에서 19만 평으로 늘려 매각수입을 올리려 했으며, 모든 건물은 고층으로 계획했습니다. 근린주구(近隣住區)의 개념을 도입한 것입니다. 또, 시청사 도입, 지하철 2호선 통과(당시 계획은 지금의 순환노선이 아니었음), 야간통행금지 해제 등의 부가적인 계획이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또, 이에 맞추어 서울시에서는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건설했고, 약 29.5억 원의 수익(한강건설특별회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튼, 이 계획대로 여의도는 건설되었고, 현재의 여의도를 이루는 근간이 된 것입니다.
[14-1 여의도공원과 국회의사당]
또, 그 사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사시 활주로를 쓰일 광장을 만들라는 지시가 있었고, 이로 인해 여의도광장 (현 여의도공원)이 계획되었습니다. 이는, 김수근의 2층 도시계획을 실현 불가능하게 하는 치명적 요인이었습니다.
[15. 5호선 승강장]
1974년 광복절,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으로 인해 양택식 시장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구자춘 시장이 취임합니다. 그는 3핵도시 구상 때문에 지하철 2호선을 순환선으로 새롭게 설계합니다. 이로써 여의도를 통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손정목 교수는 그의 저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3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마포 - 여의도를 피한 것은 그의 전임 김현옥, 양택식 시장이 만든 것이었기에 구 시장은 여의도에의 새로운 투자는 피하는 눈치였다.
여의도 시청사 이전도 비슷한 이유로 무산됩니다. 여의도에 전철이 지나가게 된 것은 상당히 1996년의 일이었습니다.
[16. 여의도역 맞이방]
5호선 건설 당시 9호선 역사를 선 시공했기 때문에, 여의도역의 대합실은 전체적으로 5호선한 느낌에 9호선이 섞여 있는 모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하지만, 9호선측 개찰구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十자 형태에서, 동-서 모퉁이는 9호선, 남-북 모퉁이는 5호선 개찰구가 있습니다.
지하상가 같은 건 없는 대신, 300m 정도 떨어진 IFC몰과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의도 버스 환승센터도 이쪽입니다) 자, 이제 여의도역 밖으로 나가서 주위를 둘러봅시다.
아, 엄청난 TMI인데 저는 이때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서 고생했네요. ㅠㅠㅠ
[17. 여의도역 사거리]
여의도역은 여의도역 사거리와 의사당대로가 만나는 교차점에 있습니다. 여의도의 남서축과 동서축이 만나는 곳…은 아니고 그 곳(여의도공원 앞 교차로)에서 한 블록 옆에 있습니다. (신안산선 여의도역도 이쪽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하지만, 여의도의 상업지구 중심에 있는 것은 맞습니다.
[18. 여의도의 고층건물들. 국제금융로2길]
여의도역 주변에는 특히 증권사나 은행 본사가 많습니다. 이는, 1974년 증권거래소와 증권협회가 여의도에 문을 열었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은 서울의 대표적인 자랑거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완공 당시 동양 최대였던 63빌딩(1985, 250m), 파크원(2020, 333m), IFC서울(283m, 2012) 등 수많은 고층건물이 여의도 상업지구에 있습니다.
[19. 미성아파트]
한편, 여의도역 사거리의 네 모퉁이 중, 한 모퉁이는 ‘미성아파트’라는, 라이프주택에서 1978년 완공한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은 더 넓게 보면, 여의도역과 9호선을 기준으로, 북쪽이 상업지구(고층건물), 남쪽이 주거지구(아파트)입니다. 나름 중, 대형 평수로 (33평~59평)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여의도가 서울에서 대표적인 부촌 아니겠습니까? 현재 재개발을 열심히 추진 중인 것 같네요.
[20. 지도]
아, 그리고 이 일대는 2024년 완공 목표로(2021.07 기준) 신안산선 건설이 진행 중이고, GTX-B노선도 건설을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또, 최근에는 신월여의지하도로(경인고속도로 지정해제구간 지하화), 더 현대 서울, 애플스토어 2호점 등 각종 호재가 여의도 인근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를 쭉 갖고서, 여의도가 명실상부한 서울의 도심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면 좋겠습니다.
[21 여의도역 출구들의 모습]
참고문헌
안창모. (2010).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여의도의 소외와 개발. 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1(5), 53-68.
여의도동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권, 3권 | 손정목, 한울
나머지는 본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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