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에 얽힌 만물의 이야기

철길과 관련된 세상 만물의 이야기를 담아보겠습니다

철도/수도권

[이번역은] 송파 잠실새내역 | 한강을 건넌 땅, 잠실 (2)

슈뢰딩거의 구름 2020. 3. 13. 03:22

다녀온 날: 2017.01.21

 

 서울도시철도 2호선 잠실새내역  |  역번호 217  |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잠실동) 소재 

 1980.10.31 개업  |  2 승강장 2타는곳, ㅁ||ㅁ)  |  출구 8개소 

 

한강을 건너는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걸기. 수영하기, 차타기, 버스타기, 전철타기, 비행기타기 등 나만의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건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때요? 내가 서 있는 땅 전체가 한강을 건너는 겁니다. 참신하죠? 하지만 이것은 바로 이곳, 잠실에서 몇백 동안 실제로 벌어졌던 일입니다.

 

 

 S#.1  이번역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잠실새내, 잠실새내역입니다.

 

 

잠실새내역 승강장 이모저모

 

잠실새내역에 도착했습니다. 내려서 승강장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갈때 까지 기다렸다가 여김없이 사진을 찍어줍니다. 전체적으로 2호스러운 타일이 붙어 있는, 2호선스러운 승강장입니다. 리모델링을 아직 안 한 듯 합니다.

 

잠실새내역 스크린도어. 흔히 2호선에서 불 수 있는, 그것입니다

 

그나저나 왜 아까 잠실나루역에서는 내선순환 열차를 탔는데 지금 외선순환 승강장에 있냐면요...

 

 

 S#.2  이번역은 2016년 12월 15일, 신천역에서 잠실새내로 역명이 변경되었습니다.

 

바로 전에 갔던 잠실나루역에서 내선순환 열차를 탔으므로 내선순환 승강장에 있을 터이지만,  오늘 마저 남은 일정을 정리하다가 깜빡하고 잘못 내렸습니다. 뭐 이참에 종합운동장 승강장 사진도 찍고 왔으니 결과적으로는 나쁘지는 않게 됬군요,

 

사실 이 전 역은 '잠실'이고 이 역도 '잠실새내'로 잠실이 2번이나 들어가기 때문에 대충 들으면 했갈리기 쉽상입니다. 당연히(?) 처음 지었을 때는 이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이상했던 이 동네 역 이름 '신천역'

 

잠실 일대 법정동 지도 (2호선만 제작)

 

이 동네 역 이름이 진짜 이상했어요. 원래 잠실나루역은 성내역, 잠실새내역이 신천역이었거든요. 근데 성내역은 성내동 아닌 신천동에 있었고요. 신천동은 신천역 아닌 잠실동에 있었습니다.

 

신천역 변경 안내문

 

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이름 때문에 2010년에 성내역이 잠실나루로 바뀐 겁니다. 하지만 신천역의 상황은 조금 더 달랐습니다. 법정동 이름이 다른 점도 있었고, 같은 노선상에 있는 '신촌역'과 발음이 비슷해 혼동의 우려도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기존의 역 이름을 고유어 '새내'로 바꾸고, 앞에 '잠실-'을 붙여 잠실새내역으로 2015년 말에 개명합니다.

당시 역명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1000명 중 88%가 응답했고, 잠실새내(44%). 잠실타운(33%), 신잠실(18%)순이였다고 합니다.

 

 '잠실-'을 붙이게 되어서 2호선에는 잠실**역이 연이서 3개가 나오게 되었고요. 그나저나 '잠실'이 들어간 역명으로 아파트값을 올리려는 지역 주민들의 수작이라는 비판의 여론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신천'의 근원을 찾아서

 

서울도시아카이브 참조

제가 인터넷을 뒤저 찾은 1957년의 잠실 지도입니다. 당시 잠실은 섬이었어요. 당시 잠실도 아래로 흐른 강이 한강 본류인 송파강이고, 위쪽은 홍수로 새로 만들어진 강이라 해서 새내(신천강)라 불렀습니다. 신천의 유래죠.

 

잠실동이 동쪽, 신천동이 서쪽으로 지금과는 뭔가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잠실지구가 개발되면서 두 마을은 없어졌고 토착민들은 지금 잠실새내역 일대의 잠실본동(행정동) 지역을 보상받아 이주했습니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이 동네의 시장 이름도 '새마을시장'인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잠실새내역 인근이 진정한 '잠실'의 모습에 가까운 곳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잠실나루역 글에서 다뤘습니다. 순서때문에요ㅠㅠ)

 

 

 

◈ 신천역의 흔적을 찾아서

 

신천역이 12월 중순에 바뀌었다는 소문에 허겁지겁 기록을 위해 출사 기획을 세웠지만, 정작 나가게 된건 1월 말이었습니다. 그래도 역 안에서 '신천역'이라는 이름을 열심히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안보이더라고요.

 

휴대용 비상조명등도 이미 역 이름을 바꿨고

 

창고 이름,

승강장 끝에 있는 안내표지판,

 

노선도

노선도판(?),

 

cctv 설치안내 등

눈에 보이는 신천이란 신천은 전부 스티커로 역 이름을 바꿔놓았습니다. 이야 일 처리가 빨랐네요.

보통 이런 거 열심히 안 할것 같았는데 거의 전부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전철타면서 봤던 풍경은 안 이랬거든요. 올해 2월 말에 전철을 탔을 때 작년 말에 개통한 신내역에 미개통 스티커가 붙어 있던 것을 보고 경악했을 정도로 최근에도 일아나는 일입니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 겨우 찾았습니다. 아주 작은 두 글자 '신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 힘들었어요.

 

 S#.3  이번역역이 위치한 잠실지구는 원래 한강 이북이었던 지역입니다.

 

◈ 대합실 모습

 

자, 그래도 대합실 구경이나 하자고요. 역시나 오래되 보이는 역 인테리어처럼 개찰구도 삼발이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대합실 역시 초록초록한 (미역국 국물색의) 타일로 되어 있습니다.

 

◈ 잠실새내역은 잠실지구 한복판에 있다.

 

잠실본동 쪽으로 뻗어 있는 잠실새내역 4,3번출구

역 출구안내도를 싹 훑어보고 일단 4,3번 출구로 올라왔습니다. 모든 출구를 반시계방향으로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이죠. 사람이 격하게 많죠? 잠실새내역이 있는 올림픽로 양 옆으로 상가가 쭉 늘어서 있거든요. 상가는 낮은 주상복합의 형태로 잠실본동 쪽으로 좀 뻗어 있어서 약간 큰 상권입니다. 그리고 저 상가 뒤로는 아파트와 빌라의 향연이 펼처집니다. (그나저나 눈이 그쳤어요!)

 

 

주변지도 한번 더 보시고요

 

잠실새내역은 2018년 서울교통공사 기준 하루에 53,257명이 이용하는 수도권 이용객수 상위 12.6% (2018기준, 교통안전DB) 전철역입니다.

 

 

잠실이 한강 건넌 썰

 

글 제목의 떡밥을 드디어 환수할 차례가 왔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잠실은 원래 강북(양주목)에 속한 땅이었고, 홍수 등으로 물길이 바뀌어 일제강점기때는 섬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리고 이 섬에는 거대한 모래밭이 있었습니다. 현 잠실나루역, 강변역 일대도 잠실섬의 모래밭이었습니다. 이 섬의 면적은 약 여의도의 4배.

 

하지만 이 섬이 강남이 된 것은 뜻밖의 사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 광주대단지와 잠실대교 건설 - 잠실지구의 단초

 

광주로 강제 이주당한 도시 빈민들 (2)

 

광주대단지를 아시나요? 60년대 말 서울 시내 각종 판잣촌 등에 살고 있던 도시 빈민들을 서울 변두리 시골이었던 성남시 수정구, 중원구 (당시 광주) 일대로 강주 이주키고 거기에 일반 시민들도 모집해서 만든 신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지역에서 서울로 접근하는 변변한 도로는 없었고, 광진교가 있던 천호지역과 연결된 비포장 길이 유일했습니다..

 

잠실-대왕교 기간도로 기공식. 1972-03-16 출처: 서울사진아카이브 (http://photoarchives.seoul.go.kr/photo/view/36263?keyword=%EA%B4%91%EC%A3%BC&viewtype=normal&ordertype=p_dt&page=5)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잠실지역에 잠실대교를 신설했고, 광주 대단지와 서울시를 잇는 여러 도로공사를 70년대 초에 실시했죠. 위 사진은 당시 공사했던 도로 중 하나의(현 송파대로) 공사 기공식에 사용했던 지도입니다. 완공 당시 한국에서 2번째로 긴 다리였던 잠실대교는 1972년 7월에 개통했어요. (당시 1위는 마포대교)

이때 개통한 도로들은 경부고속도로 양재IC-내곡동-복정역을 잇는 현릉로(1)도 이때 만들어진 도시였습니다.

 

공사중인 잠실대교 모습 (4)

 

 

이 때, 잠실지역을 개발해서 잠실과 광주 대단지 지역을 서울 도시권으로 묶자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잠실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라고 끝내면 완벽한 전개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시실 잠실지구 개발은 거대한 정경유착의 현장이었습니다.

 

사실 원래 잠실은 지금처럼 육지화 시켜 개발할 생각이 없었다고 해요. 그냥 잠실섬은 섬 대로 놔 두고 현 석촌호수 이남을 경공업지역으로 개발할려고 했습니다. (1966년까지) 그러나 67년, 한강 주면에 막대한 제방을 쌓을 것을 계획한 한강개발계획에서 뒤집혔고, 지금의 주거지구 위주의 개발로 방향이 틀어지게 됩니다. (7)

 

 

◈ 정치자금이 촉발시킨 잠실지구 개발

 

시계바들을 거꾸로 돌려 1969년으로 넘어갑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대통령의 3선 연임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헌법 개헌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습니다. 장기독재의 독재의 기초를 탄탄히 다진 사건이었습니다. 왜냐면 2년 뒤인 1971년에 대통령 선거가 총선과 함께 있었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은 거액의 정치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은 건설업체 대표들에게 추가적으로 거액의 정치자금 상납을 요구했고, 그 대신 건설사 대표들에게 이권을 넘겨줬습니다. 그 이권이 바로 "잠실 공유수면 매립공사"였습니다.

 

그나저나 박 전 대통령은 그렇게 1971년에 자금을 퍼 부었지만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95만표 차이로 겨우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상당히 본인 입장에서는 분통 터졌을 꺼에요. 결국 이는 박 전 대통령 자신의 셀프 쿠데타를 일으키게 됬죠.

 

 

공유수면

 

근데 공유수면 매립이 무었이길레 건설사 대표들이 수궁했을까요.

바다와 강, 하천 등을 공유수면이라고 합니다. 공공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가 소유하는 땅이지요. 그러니까 이 땅을 매립한다는 겁니다.

 

한강은 여름철만 되면 툭하면 홍수가 나고 주변 지대가 침수대기 일쑤였습니다. 1960년대 말,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한강변에 재방을 쌓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에서 이 상황을 가만 보니 좋은 생각이 난 거에요. 기존 재방과 새로운 재방 사이에 드넓은 빈 땅이 생긴 건데 이걸 매우게 되면 잡을 지을 수 있는 땅이 됩니다. 막말로 새로운 땅이죠. 그리고 이 걸 팔아 막대한 이윤을 챙긴다는 거지요.

이 일감을 수주한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인 공사였습니다. 일단 건설업 비수기인 12월부터 4월 사이에 놀고 있는 물자를 동원해서 할 수 있고, 게다가 이렇게 조성된 땅도 나라에서 다시 회수해 갔어요. 땅만 파면 돈이 나오는 장사죠.

 

각종 이익단체가 끼어들었고, 한강 주변에는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 새로 생긴 땅이 반포, 서빙고, 압구정, 구의 등 지금의 한강변 아파트촌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잠실'이었습니다. 잠실도는 이 공사를 통해 육지가 됩니다.

 

◈ 공사의 시작

 

잠실지구계획도 (5)

 

공사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모래밭이던 잠실섬을 강남에 붙인 뒤 신도시(잠실지구)로 개발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당시 본류였던 송파강을 매우고, 그 대신 신천을 넓혀야 했고요. 따라서 일단 잠실의 공사는 송파강을 막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1971년 2월에 시작된 물막이 공사는 그 해 4월에 끝났습니다. 이 공사를 위해 공사 마지막날에는 상류의 댐을 열어 한강 수위를 낮추는 등 여러 노력이 있었고요. 그나저나 이 공사는 승인도 받지 않고 시작했던 불법 공사였다고 해요.

그리고 물막이 공사가 끝내고 잠실을 매립하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흙으로 매웠지만 흙이 부족해 지자 당시 넘처나던 연탄재로 매습니다. 이때 부족한 흙을 몽촌토성에서 가져가 쓰려고 했다고 하니 까딱하면 소중한 문화유산이 없어질 뻔했습니다. (6)

 

◈ 한국 도시설계에 한 획을 그은 잠실지구 종합지구계획

 

네이버 지식백과 ( 서울시 도시계획용어사전 > 토지구획정리사업)에 표시된 개념도

 

잠실지구도 따른 지역처럼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했습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각 토지를 재배치 하는 것입니다. 일단 어느 지역을 개발한다고 처 봐요. 일단 이 일때를 갈아 엎어요. 기존 구불구불한 길도 반듯하게 만들고 중간에 공원도 만들고요. 그리고 남은 땅들을 원래의 지주들에게 나눠 줍니다.(환지) 이 과정에서 땅값이 오르기 때문에 지주들이 받는 땅은 원래 땅보다 적어지고, 국가는 남는 땅에 더 넓은 도로와 각종 공공시설을 지을 수 있습니다.

강남(영동지구) 등은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했고, 지금도 이뤄지는 방식입니다. 기존까지의 개발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특별한 도시설계 없이 마구잡이로 격자 형태의 도로망으로 개발했어요. 녹지 따위는 최소한으로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잠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국제 스포츠 경기를 치르기를 원했고 잠실지구에 국제 규모의 스포츠 경기장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잠실지구를 좀 국제적인 신도시로 개발하라고 지시했고, 이는 잠실이 종전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개발되게 합니다. 바로 "도시설계"라는 큰 그림을 도입하게 한 것이죠. 당연히 기존의, 시가지를 넓히는 데만 치중했던 잠실 개발기획은 전면 재검토되었습니다. 당연히 사업은 중단되었죠.

 

바뀐 잠실지구 계획. (7)

 

1973년 10월 국무총리의 지시사항 이후, 1974년 7월, 한국 최초 도시설계를 다룬 용역보고서인 잠실지구종합개발계획이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잠실은 이 보고서에 기초하여 차근차근 개발해 나갔죠. 이 때의 기획과 현재의 잠실이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훌륭한 계획이였다는 뜻이겠죠.

 

한티역 일대 대치4동 (영동2지구)와 잠실새내역 일대 (잠실본동)의 도로망 비교 둘 다 택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개발되었다.

 

일단 기존의 격자형의 도로 배열을 택하지 않고, 잠실역 일대를 중심으로 모이게끔 환상형의 가로망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대형 도로 -> 중형도로 -> 소형 도로로 체계적인 형태의 도로망을 계획했습니다. 외부 차량이 주거지역 내부로 들어가지 못하게요. 아무렇게나 생긴 강남의 도로망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1974년에 따른 계획. (7)

 

그리고 환상형 도로의 중심에는 상업구역과 업무구역을 계획했습니다. 서울 도심의 기능을 분산시켜, 이 일대가 부도심으로써 작용하게 한 것입니다. 교통 흐름 감소, 출퇴근 거리 감소 등을 노린 것이지요.

 

그리고 이 도심을 중심으로 주거지역을 조성했습니다. 기존 도시계획은 주거지역 지정하고 땡이였지만,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어느 건물이 들어서야 하는지 정해졌습니다. 중심으로 갈수록 높은, 고밀도 고융적률의 건물을 짓도록 했습니다.

 

역에서 바라본 롯데월드타워. (잠실지구 중심지)

 

그 외 계획에서 학교 배치를 규제하고 여러 녹지에 대한 기준을 자세히 세우는 등, "앞으로 건설될 도시의 모습을 고려해서" 배치해 기존 설계와는 대비된다고 인용한 논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도 재탕! 주공아파트들을 보실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밖에 추가로 기존 땅 지주에게 돌아가는 땅의 비율을 줄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형 '채비지'들을 마련했고요, 이는 올림픽경기장이나 대형 주공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주공아파트는 1~4단지(1974-1975)와 5단지(1976~1977)로 나뉘어 건설했는데, 특히 1~4단지는 계획인구 10만명으로 세계적으로 드문 규모의 사업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5층의 엘리베이터 없는 저층아파트로 지어졌고, 특히 1단지에는 7.5~10평의, 초소형 아파트였습니다. 1~4단지는 전체적으로 7.5~15평 정도였고 연탄과 지역난방을 사용했습니다.

 

1980 신천역 주변지도 (서울항공사진서비스 https://aerogis.seoul.go.kr 참조)

 

5단지는 당시 최고층인 15층으로 지어졌습니다. 당시 '국영기업체의 명예'를 걸고 지었다고 표현했을 만큼, 평수는 34, 36평(실평수 23, 25평)이었고,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아파트 내 체육관을 건립하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한 아파트였다고 합니다.

 

리센츠 아파트의 모습

 

이 역 북측의 잠실엘스아파트나 리센츠 아파드, 트리지움 아파트, 래이크팰리스 아파트는 모두 잠실 주공 아파트 1~4단지를 재건축한 것들입니다. 잠실주공5단지는 아직 남아있어요. 이 아파트들은 현재 한국 전국에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의 모델격이 되는 아파트입니다.

 

올림픽로

 

잠실새내역 2번, 1번출입구의 모습.

그나저나 역이 있는 교차로의 이름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마저 출구구경을 해야죠. 1,2번 출구는 트리지움아파트(구 주공3단지) 정도만 있어서 한산합니다.

 

2호선을 따라 가는 올림픽로의 모습. 도로 중앙에 올림픽 각 종목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는게 특징입니다. 이 역시 잠실지구개발로 정비된 도로죠. 가로변 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되어있네요.

 

 

 

다시 대합실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잠실새내역 북측면에 있는 출입구들도 둘러보자고요.

 

 

 

8번출구와 그 앞에 버스정류장. 정류장에 있는 역들도 그러고보니 '잠실새내역'으로 싹 다 바꿨습니다. 허허

 

 

 

7번출구와 그 뒤로 펼쳐저 있는 상가들. 어느 정도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6번, 5번출입구

잠실엘스아파트(구 주공1단지) 측의 5,6번 출입구. 불럭에 약간에 상가와 아파트밖에 없다보니 한산합니다. 역시 상가가 있는 3,4번 출구(가장 먼저 본 출구)가 잠실새내역에서 가장 번잡한 것 같네요.

 

이만 버스를 타고, 아까 잘못 갔던 종합운동장역으로 가겠습니다. 잠실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런데,

 

갑자기 눈이 심상치 않게 내리기 시작합니다...오늘만 세번째인데 과연

 

2020.03.13 작성

 

 

출처

 

(0) 서울도시계획이야기3 | 손정목 저 (도서)

 

(1) 광주團地(단지)~京釜高速(경부고속)연결 간선路(노) 12㎞新設(㎞신설) 동아일보 | 1970.12.08

(2) 希望(희망) 안테나 (5) 광주團地(단지)의 所望(소망)들 동아일보 | 1971.01.22 

(3) 永東(영동)·잠실지구 개발 경향신문 | 1970.06.16

(4) 모래밭에 새都心(도심)실는 蠶室大橋(잠실대교)경향신문 | 1972.01.25

(5) 잠실島(도) 地區(지구) 開發着工(개발착공)동아일보 | 1971.02.17 

(6) 연탄재로 메운 땅, 박정희 한 마디에 금싸라기 되다[강남공화국의 민낯5] 뽕밭은 어떻게 콘크리트숲이 됐나 | 오마이뉴스 2017.07.30 

 

(7) 김진희, 김기호. (2010). 1974년 「잠실지구종합개발기본계획」의 성격과 도시계획적 의미 연구. 한국도시설계학회지 도시설계, 11(4), 41-58.